




“ 선배, 데스크에서 지시 내려왔… 선배? 아, 곧 마감인데! ”

이름: 정이한
나이: 32 세
성별: 남
키/몸무게: 180cm / 68kg
직업: 기자
외관
또렷한 눈매의 갈색 눈동자는 선했고 언제나 뽀얀 웃음이 내걸린 탓에 만만하게 보이기 십상이었다. 웃을 때마다 눈가가 둥근 선을 그리며 부드럽게 휘어졌다. 평소 아무 생각 없을 적의 표정조차 웃는 상. 유순한 눈매가 그의 첫인상 대부분을 차지했다. 180cm의 큰 키에 평균보다 조금 마른 편의 68kg 몸무게로, 몸선이 얄쌍하여 굳이 눈여겨보지 않아도 도련님 팔자상이다. 다만 피곤한 얼굴로 이따금 미간을 눌러댈 때마다 사회에 물씬 젖어가는 태가 났다. 근육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마른 몸이다. 살인적인 기자 스케줄에 운동할 틈도 없이 근육만 죄 빠져나간 듯하다.
귀 부근에 잡티가 약간 남아있는 피부는 깨끗한 편에 속했다. 강한 햇빛에도 잘 타지 않는 특성 탓에 샌님마냥 새하얀 피부가 두드러진다. 별다른 피부관리법이 없기에 피부 유지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손만 내저었다. 날렵한 콧대와 올망진 콧망울이 말끔한 인상을 더했다. 그 아래 자리한 입술은 얇은 편인 데다 혈색이 옅다. 핏기 없어 보이는 입술에 아프냐는 말도 제법 들을만했지만 습관처럼 자리한 밝은 웃음 덕에 되레 왕성한 소년 느낌이 풍겼다.
곱슬기가 거의 없는 생머리로, 빗질 외에는 머리 손질에 전혀 관심이 없다. 언제나 같은 길이의 머리칼에 단정히 빗어내린 스타일을 고수했다. 앞머리를 자를 때가 되어 눈썹을 덮는 길이가 다소 거슬리는 것 외에는 보기에 깔끔했다. 다만 머리숱이 태생적으로 많은 탓에 약간 붕뜬 느낌이 들었다. 유난히 새까만 흑색도 특징이라면 특징. 한창 팔팔하게 뛰어다닐 청춘 때 탈색을 몇 번 했던 탓에 완전히 짙은 검은색으로 염색한 후로 머리색을 바꾸지 않았다.
강박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옷차림은 단정했다. 업무 시 흰 셔츠에 단색 넥타이, 짙은 정장 차림을 고집했으며 사석에서조차 셔츠에 말끔한 코트로 말끔함을 강조했다. 현재 착용 중인 옷은 검은색 셔츠와 슬렉스, 카멜색 바바리코트. 장신구는 전혀 착용하지 않았으며 태그호이어 브랜드 시계만을 왼쪽 손목에 차고 있다. 제법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듯 싶었다.
성격
자유주의 신봉자 // 외유내강 / 대형견 // 샌님의 정의 / 온실 밖 진실 // 자질 부족 / 피해 의식
밀은 자유의 기본 영역을 셋으로 나누었다.
첫째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 즉 모든 주제에 대해 의견과 주장을 펼치고 생각과 감정을 자유로이 가질 수 있는 자유다.
둘째, 기호와 탐구의 자유. 사람은 저마다 개성에 맞는 삶을 설계하고 자기 좋을 대로 살아갈 자유를 누려야 한다.
셋째, 결사의 자유.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은 어떤 목적의 모임이든 자유롭게 결성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의 문제는 의지의 자유가 아니라 시민적 혹은 사회적 자유이다. 이런 자유를 절대적으로, 무조건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2-공공재 공급자’
오랜 시간 견고히 다져온 탑은 무너지는 법이 없다. 경험이 부족한 사람도, 지리멸렬히 겪어온 사람도 끝내는 저마다 탑 하나씩 쌓아올려 한갓지게 탑 꼭대기나 쳐다보는 때가 올 것이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의 뺨을 때리고 너 같은 건 낳지 말아야 했다는 망언을 퍼부을 적부터 처절하게 깨달았다. 온전한 자유가 온전한 인간을 건립한다. 존재의 자유와 차별을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진다면 나는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 벼랑에 내몰린 어린 양이 내놓은 최후의 발악 따위의 것이었다. 오랫동안 그 생각만을 곱씹고 곱씹다보니 사상은 개인적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영역까지 고개를 드밀었다. 완벽한 자유주의의 신봉자. 그는 스스로를 그렇게 정의내렸다. 그는 그 자신의 정의를 추구할 권리가 있고 어떤 사항에서의 간섭도 사양할 수 있다. 만일 현실과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인물이 아니었다면 그는 호모 사케르로 전락했을지도 몰랐다. 이를 전락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는 일종의 ‘밀의 후예’이다.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개인의 자유와 인권, 노동권을 제약하는 데 반대하며 민영화, 자유화, 개방화에 긍정적이다. 이는 가능한 한 많은 요소를 시장과 개인의 선택에 맡길 때 비로소 진정한 경제가 시작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징병제는 강제로 인원을 동원하는 것이기에 모병제를 지지한다. 선택의 자유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더불어 교육환경 내 통제 또한. 이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다소 우파의 사고를 지니고 있으나 그의 사회적 면모에서 자유주의가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좌파의 성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가 배척받는 진보 진영에서 꿋꿋하게 계승해나가는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제 가치관을 대놓고 드러내는 법은 거의 없었다. 팔팔한 스무 살 적과 달리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 현실에 수긍하는 법 정도는 알았다. 논쟁이 벌어질 때조차 예, 예, 하고 웃는 얼굴로 듣고만 있는 넉살 좋은 성격의 소유자. 그러나 가슴 한편에 타오르는 신념은 건재했다.
서글서글한 웃음에 반듯한 외모, 그리고 유들유들한 태도까지. 밉보일 구석은 어지간히 없었으며 척 보아도 온실 안 화초 상이었다. 그러나 겉보기와 다르게 속내는 제법 단단했다. 누군가의 지탄에도 사람 좋게 웃어 보였으며 웬만한 일로 정신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자아성찰이 뛰어난 사람이라 자부하기에 스스로 무너지는 일도 드물었다. 오랜 세월 견고하게 다져온 가치관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쉽게 쓰러지지 않기에 주변인으로부터의 신뢰감도 두터운 편이었다.
속이 강한 사람은 되레 겉이 부드러운 법이다. 누구에게나 지키는 매너와 사람 기분 봐가며 구는 태도가 제법이었다. 한번 꽂히면 쉴 새 없이 알짱거릴 뿐만 아니라 생글거리는 낯으로 졸졸 쫓아다니기까지. 사람 가리지 않는 붙임성은 덤이다. 없어야 할 꼬리가 살랑살랑 보이는 게 어찌 보면 대형견 같기도. 그 영화 봤어요? 나도 봤는데! 꼭 게임 화면 같고 재미있던데 왜 다들 어지럽다고 하나 모르겠어. 나중에 다른 영화도 추천해줄까요? 아, 싫어요? 알았어… 눈에 뵈는 사람마다 따라붙어 신나게 말 거는 꼴이 사교성 하나는 타고 났다 싶었다. 실제로도 사람 자체를 가려 사귀지 않았다. 모든 사람은 존중받아야 할 개성과 인격이 있다는 신념 덕에. 지나칠 정도로 개방적이기도 했다. 상대의 모든 것을 수용했다. 자신이 타인의 사상적 간섭을 원치 않으니 저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우습게도 말재주는 없었다. 타고난 유머감각이나 유려한 말솜씨 따위는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상대를 진심으로 대했고 배울 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한 태도는 자연스레 겉으로 우려나기 마련이다. 모든 사람과 친해질 수는 없어도 노력 끝에 얻은 호의는 진심이다. 모든 사람의 첫인상은 긍정적일 것.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것. 항상 지켜오던 신념이었다.
‘공정’, ‘진실’, ‘정의’를 그대로 빼어다박은 사람이었다. 완전한 이상주의자였다. 공정은 반드시 추구되어야 하며 모든 사람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평등한 기준 아래에 서야 한다. 양면성을 지닌 진실이라도 진실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충분하다. 진실을 좇는 사람은 언제나 옳다. 정의 없이는 모든 행동이 무의미하며 평등의 가치는 진정한 정의 위에 존립한다.
“상식적 판단에서 옳은 일이라면 바꾸지 말자. 내가 죽을 때까지 그 원칙에서 흔들리지 말고 나가자.”
/손석희 아나운서 언행 발췌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주변환경을 크게 벗어날 수 없다. 대기업 회장이신 아버지와 육군 장교 출신인 어머니 밑에서 부유하게 자라왔으니, 아무리 벗어나려 노력해도 결국은 온실 안 화초. 머뭇거린 적은 있었으나 엘리트 코스를 착실하게 밟아왔고, 비상한 지능에 아낌없는 지원까지 부족함 없이 자라왔다. 그는 지독한 이상주의자였으나 현실에 무지했다. 개인의 자유에 관한 모든 침해를 없애고자 하였으나 어떻게 피해를 입는지 몰랐다. 모든 편견을 막고자 하였으나 어떻게 고통받는지 몰랐다. ‘무엇’ 정도는 검색 따위로도 알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였다. 그에게는 현실이 부족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언론사에 취직하기 전까지 그가 겪은 부당함은 부모님의 반대 정도에 그쳤다. 입사한 이후에야 온실 밖에서 맞닥뜨린 현실에 처음으로 이상에 의문을 품었다. 기자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 이상에 목매여 사는 그가 만일 유약한 성격이었다면 곧바로 기자를 그만두었을 법했다. 정의가 살아있을 거라는, 실날 같은 믿음을 붙들고 있기에 버틸 수 있었으나 가슴 한편에 남은 의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 스스로가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막연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뛰어난 학업 능력과 부유한 집안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으나 막상 사회생활을 시작하니 장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필기시험에서 두 번을 떨어지며 절감한 논술 실력의 부족, 그리고 이따금 불타는 정의감에 휩쓸려 냉철함을 잃을 때마다 선배들로부터 쓴소리 듣기는 부지기수였다. “나는 열정적이고 정의감이 있었지만 기자로서 가장 중요한 냉철함을 지니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정치로 길을 돌렸다.1”라는 과거 국회의장의 말처럼 기자로서 자격 미달이라 할 수 있었다. 판을 잘못 읽어 ‘막판 타결 가능성’. ‘절충점 모색’ 등의 마무리를 덧붙여야 할 기사에 ‘합의 불투명’, ‘협상 난항 겪어’ 등으로 기사를 내며 낙종 기자로 전락할 때도 종종 있었다. 초짜라는 변명은 스스로 납득하지 않았다. 기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해보는 나날이 늘어갔다. 그러나 자신의 꿈이 있었기에, 그가 존경하는 조갑제와 권상하 같은 기자가 되기 위해 아직 포기는 이르다고 스스로 되새겼다.
1이만섭 전 국회의장. 2015. 성한용 <한겨레21>기자.
자꾸만 과거에 발목을 붙잡혔다. 피해의식은 찌꺼기처럼 잔존했다. 멋모르는 편견이 두려웠다. 다시는 자신 같은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막연한 바람이 있다.
“진실은 날붙이 같잖아요. 우리 같은 사람들 없이는 그저 진실로서 존재할 뿐이지만 잘 벼려낸다면 무기가 될 수도 있죠. 다른 사람을 해치기도 하고요. 나는 진실을 다듬는 것도 좋지만, 그로 인해 누군가 다치는 것을 막고 싶습니다. 뭐든지 망가뜨리기는 쉬워도 지켜내는 것은 어렵잖아요.”
기타 사항
1. PROFILE
1-1. 1988.10.17. 서울특별시 출생.
1-2. RH+B. 1-3. 오른손잡이.
1-4. 왼쪽 0.9 오른쪽 1.0.
2. 가족관계
2-1. 이남무녀 중 차남. 늦둥이 아들이라 애지중지 자랐다.
2-2. 친부 정호철, 호신그룹 회장. 친모 지연숙,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대령 진급 후 전역. 친형 정준서, 호신전자 사장.
2-2-1. 호신그룹은 보수계열의 기업집단으로, 주요 산업은 전자, 통신, 건설이다. 최근 ‘대한개신교인장려협회’의 설립을 추진 중이다. 표면상 한국 개신교의 발전과 종교적 성숙을 도모하기 위함이라 하나 이면에 거래가 있는 모양.
2-3. 외조부 또한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국방부 장관까지 지낸 경력이 있다. 외가가 대대로 사관학교 출신 군인 집안이었다. 따라서 장남인 정준서는 호신그룹 후계자, 차남인 정이한은 육군 장교로 키우고자 하였다. 정준서는 집안의 뜻을 따랐으나 이한은 제 의사로 인해 어긋난 케이스. 현재는 부모조차 포기한 상황이다.
2-4. 독실한 개신교 집안.
3. 학력사항
3-1. 하나고등학교 졸. 포스텍 자퇴 후 서강대 사회학부 정치외교학전공 졸.
3-2. 고등학교의 경우 일반전형으로 입학했으며 입학 성적과 졸업 당시 내신 성적 모두 우수했다. 모의고사 성적 또한 마찬가지였다. 국어를 제외한 전 영역은 전부 1등급. 완전한 이과이기도 했다. 공부만큼이나 기계장치나 로봇을 만지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다. 2학년 때까지 생활기록부의 진로희망란에는 ‘기계공학자’라고 적혀있었다.
3-3. 그러나 3학년 때 권성하 기자의 칼럼을 계기로 색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기자로 꿈이 바뀌었다. 부모님이 강요하시는 육군사관학교도 고의적으로 떨어졌으며 육사 재수는 않겠다고 강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기자로서의 꿈도 확신할 수 없었고 인문계열은 부모님께서 완고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결국 공대 입학으로 결론이 났다.
3-4. 포스텍에 입학한 후에야 완전히 마음을 굳혀 재수에 돌입하였고, 수능 성적이 생각보다 낮았던 탓에 성적에 맞추어 서강대 사회학부에 입학했다. 원하던 미디어학과는 아니었으나 정치부 기자로 약간 노선을 틀 수 있다는 생각 아래 졸업까지 나아갔다. 어떻게든 기자가 되는 것이 우선의 목표였다. 훌륭한 안목의 기자가 된 후, 자신이 쓰고 싶은 기사를 쓰고자 하였다.
4. 전성일보
4-1. 전성일보 정치부 기자. 2015년 수습공채로 입사하여 현재 5년차.
4-2. 정치부 정당팀의 국회 출입기자.
4-3. 오전 7시, 목적지는 언제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이었다. 아침 라디오에서 앵커가 전날 있던 연설의 분석을 단조로운 목소리로 읊고 있는 것을 듣다보면 어느새 국회에 도착해있다. 머릿속으로 뉴스 내용을 적당히 구겨넣고 지하철 개찰구처럼 생긴 입구를 통과하자 새하얀 벽의 복도가 앞으로 길게 이어져있다. 국회 본청 1층 정론관 안 미로처럼 얽힌 파티션 사이로 전성일보 부스에 자리하면 취재 준비에 한창인 기자들이 보인다. 죄 선배들뿐이다. 그는 오른쪽의 두 번째 자리, 야당팀의 자리를 차지한다. 말진이 그만둘 때가 많은 탓에 종종 말진이 할 일도 제 몫이다. 말진은 유난히 고달프다. 회의장에서 정치인들의 말을 받아치는 일은 전부 말진 담당이다. 숨소리까지 받아쳐야 할 정도로 긴박하다. 그는 타자가 제법 빨라 말진 중의 말진이라 불리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매일 아침 열리는 공개 회의 때마다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요란했다. 백브리핑 이후 식사시간에는 야당 국회의원과 함께 식사, 얼마 전 안면을 튼 한 정치인에게 별도로 통화를 해야 한다. 저녁 7시에는 비로소 퇴근을 할 수 있다. 사건이라도 터지면 말짱 도루묵이지만. 며칠 씻지도 못하고 국회에 눌러앉은 적도 있더랬다.
4-4. 입사 전 타 신문사에서 인턴직을 한 적이 있다.
4-5. 취업 준비 당시 오직 전성일보만을 목표로 했다. 다른 언론사는 일체 넘보지도 않았다.
4-5-1. 그 이유는 권상하 기자였다. 그 칼럼을 작성할 당시 그는 전성일보의 사회부 기자였으며 성소수자 관런 기사를 다수 작성한 바 있었다. 그나마 아는 소식이라고는 이후 정치부로 옮겼다는 것이며 이한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학과 하나는 잘 골랐다 생각했다. 그의 꿈은 기자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권상하를 직접 만나보는 것이기도 했다.
4-5-2. 합격 후 희망 부서 조사 당시 1치망에 정치부를 써넣었고 전공 덕분인지 정치부에 배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권상하는 건강상의 이유로 이미 퇴사한 후였고 연락조차 힘들며 이한 또한 취재에 적응하느라 여유가 없었다. 결국 직접 만나보는 것은 후일로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5. OTHERS
- 존경하는 기자는 권상하와 조갑제. 조갑제는 현재 보수주의 성향의 언론인이지만 청년 시절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의 비리를 파헤치고 안기부의 끔찍한 고문까지 견뎌내며 취재의 열기를 불태운 기자로 평가했다. 어떠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진실에 전념하는 모습이 이한의 이상향과 적합했다. 비록 입장은 다르지만 그의 업적과 취재를 향한 열정을 존경했다. ‘조갑제의 광주사태’를 읽고 ‘대한민국 세력은 진실 위에 정의를 세워야지, 정의 위에 진실을 세우려 해서는 안 된다.’라는 문장을 좋아한다.
- 가치관은 굳이 분류하자면 중도좌파에 가까우나 정치 성향은 극좌. 보수 진영이 취하는 행보에 신랄한 비판을 날리고는 했다. 물론 진보 진영도 예외는 아니다. 정치적 측면에서 잘못된 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유주의적 가치관과 어긋날 경우 사석에서 안주거리로 까대고는 했다.
- 기자 생활 중 가장 공을 크게 세운 기사는 통합국민당의 김 의원 처분 관련 기사였다. 재판 청탁 의혹을 받고 있던 김 의원의 당 내 징계 결정이 미루어지자 김 의원의 병원 기록 등 자료를 찾아보았다. 최근 정신병으로 상담받은 기록을 발견하였고 이로 인해 징계가 미뤄졌다고 추측했다. 이를 바탕으로 기사를 냈으며 이것이 적중하여 쾌거를 이루었다.
- 미필자. 심장에 문제가 있었다.
- 비흡연자. 요즘 선배들로부터 권유를 하도 받아서 피워볼까 싶기도.
- 술을 즐기는 편이었다. 혼자 마시기보다 모임에서 다 함께 어울려 마시는 축. 주량은 소주 2병 정도.
- 매주는 아니지만 한 달에 2, 3번 정도 교회를 갔다. 모태신앙이며 기도 대부분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저 자신이 주인 되어 ...에 빠진 것을 회개합니다. 부디 제 마음의 주인 되어 저를 구원해주시옵고…’
- 이것저것 취미도 많다. 낚시, 골프, 축구 등등. 모임도 많이 나갔으나 취직 후 대부분의 모임에 발길을 끊었다.